감사하니?
상태바
감사하니?
  • 유성원 전도사(정읍 / 중광교회)
  • 승인 2005.06.17 1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옹달샘

고사리를 뜯어 데치고 말려 둔 게 한 봉다리 쯤 됩니다. 고향집에 보냈지요. 마음을 담아 드리는 일에서 소소한 기쁨을 맛봅니다.

엊그제는 고추 모종을 사려고 간만에 시장에 들렀습니다. 텃밭에 씌울 검은색 비닐도 필요했습니다. 잡초를 막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예상 밖으로 값이 비싼 터에, 아저씨 말씀을 따르자면 고추 심을 시기는 이미 지났고 벌써 깨를 심을 때라는 게지요. 하는 수 없이 돌아섰습니다. 뒤늦게 흙을 갈아엎은 탓입니다. 조금 늑장 부리긴 했지요. 유월에 심을 만한 채소는 없을까하고 뒤적여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파종의 때를 놓치지 않는 일과, 시기에 맞는 씨앗과 모종의 종류를 아는 일과, 거름 배인 흙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농사짓는 분들이 코웃음 칠 빤한 사실입니다만 새삼스럽고도 지극히 상식에 속하는 일이 다른 의미로 자리매김하는 때가 있기도 하지요. 때와 장소를 이제서야 알아가는 모양입니다.

두어 달 전에는 길 건너편에서 소나무를 분양하는 아저씨에게서 가지 치는 법을 배웠습니다.

간단하답니다. 웃자란 가지를 쳐주고 곁으로 뻗은 가지를 쳐주면 된다는 거지요. 말은 간단합니다만 직접 하려니까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 키 훌쩍 넘은 나무는 사다리를 놓고 이웃해야 합니다. 나무그늘 아래서 한적한 쉼을 즐기기 위해서는 뙤약볕과 마주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질 않던 꿩들이 요즘은 자주 나타납니다. 봉황의 깃털 몇 가닥을 가진 꿩들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병아리 대여섯 마리와 함께 도로를 횡단하는 꿩도 보입니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뜬금없이 정겨운 풍경은 보일러실 뒤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멧비둘기 새끼들인 모양입니다. 쫑알거리는 녀석들의 소리와 뒤뚱거리는 병아리들 뒷모습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위대한 합창이고 거대한 이동입니다.

며칠 전에는 연천에서 농사짓는 종안 형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뜸 󰡒아침에 일어나면 새소리 들리니?, 그거 감사하니?󰡓하고 묻는 겁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무엇에 감사했는가? 무엇을 감사하고자 하는 사람인가? 󰡒그거 감사하니?󰡓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의 토양을 되갈아 엎습니다. 웃자란 교만의 가지도 쳐내고 곁 자란 욕망의 가지도 쳐냅니다.

그리고 가만히 헤아려봅니다.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고 눈을 뜨면 보이는 창조의 이치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