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겨우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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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겨우살이
  • 유성원 전도사(정읍/중광교회)
  • 승인 2006.11.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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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아직은 견딜만한 추위고 매일 아침의 기지개는 활기찹니다. 손봐야 할 보일러가 겨우내 지낼 기름값 걱정을 덜어주지는 않겠지만, 가동되는 순간 마음의 얼음 더께도 녹일 것이고 추위 걱정도 덜어줄 것이니 지레 겨울 채비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방안 공기가 코끝을 시리게도 합니다만 어느 목사님의 말마따나 '코끝에 걸린 호흡'을 실감케하는 이치이니 되려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요소요 감사의 조건이 분명합니다.

고대 밀레토스학파 아낙시메네스는 공기의 희박과 농후로 물활의 세계상을 설명했다는데, 더위와 추위 사이에 낀 봄날의 따사로움과 가을의 정취를 알게 하는 역설인 여름과 겨울도 나름 지닌 까닭으로 까탈일테지요.

종종 교회 아이들과 축구를 합니다.

아이들을 만나려는 내 관심 보다 녀석들의 열정이 큰 탓입니다. 초등학교 넓은 운동장에 두 다리 뻗어 내리면 이내 둔해진 몸을 깨닫습니다. 쉬이 숨도 가빠오고 근육의 당김도 굵직하게 느껴집니다. 예정된 전반전 시간이 앞당겨지면 후반전은 눈 깜짝할 사이입니다.

풋내나는 녀석들의 입김을 삭이려면 중간중간 간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만만찮은 지출의 이유로 제 체력을 문제 삼아야지요. 고구마와 감자를 찌려다가 귀찮아 그저 두고만 이유도 큽니다. 아무튼 한바탕 뛰고 나면 속이 시원해집니다. 텅 빈 운동장에 아이들과 뛴 움직임과 흔적이 살아나는 듯도 하여 노을녘 집으로 향하는 길이 훈훈한 고향땅 밟는 기분으로 산뜻합니다. 그럴 때면 겨울에 따스한 형용사를 안겨주게 되지요.

날이 추워지면 바깥 생명이 집 안으로 스밉니다. 문을 열면 파리가, 한 귀퉁이 박박 긁는 소리 오래면 조그맣게 뻥 뚫린 구멍 새 들쥐가, 드나듦의 자연법칙에 놓인 생명들 모두가, 아니할 말이지만 때려잡은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가만가만 보아하니 추워하는 내 모습에서, 운동장의 흔적에서, 안팎으로 드나드는 생명들 움직임에서 귀중한 사유가 엿보입니다. 이를테면 20세기의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I. Kahn)에게서 보이는 종류입니다.

'침묵에서 시작하는 가장 큰 흔적, 침묵을 향한 가장 큰 궤적'〈(종교)건축을 만드는 행위〉 건축물(행위)에 의미를 둔 말이나 사람살이를 일컫는 말로 치환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소중한 겨우살이를 위한 채비가 여느 때와는 달라야겠습니다. 언제나 겨울은 봄을 예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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