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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성원 전도사(정읍/중광교회)
  • 승인 2004.06.2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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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 달 샘

 

여긴 촌입니다. '촌스럽다'고 할 때의 그 촌입니다. 그야말로 촌하고도 구석입니다. 세련과 낙후라는 이름으로 경계를 긋는 도시의 부촌과 빈촌이 여기에는 없습니다. 다만 삶의 자양분을 땅에서 얻는가, 물에서 얻는가의 차이로 농촌과 어촌 등의 이름을 얻었을 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신도시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도시에 세운 사람 사는 아파트마다 무슨무슨 마을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자연히 사람들은 도시와 촌이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도시와 마을이라. 어쩐지 어울리지 못하는 단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고급주택 이름을 무슨 빌 혹은 무슨무슨 빌리지라고 많이들 붙입니다. 이름은 village인데 실상은 bill이라지요? 이제 도시에서 유일하게 촌이라는 말이 붙는 곳은 아마도 판자촌일 것입니다. 그을린 나무판자를 대강대강 붙여놓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 모양새가 촌스러워보였나 봅니다.

촌이라는 말은 결국 뭔가 모자란다는 말, 빈티가 난다는 말이 되었습니다. 사람 살아가는 형편에 대한 비하와 조소가 섞인 그 말의 본뜻이 알콩달콩 사람 얘기 지어가는 마을인 것을 누구나 알지만, 어떻게 합니까? 말의 쓰임새가 말의 본질을 규정해 버렸으니 말입니다.

해질녘에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작은 땅덩어리에 혹여 빈틈이라도 있을까 하여 모를 심는 촌사람들이 보입니다. 오뉴월이면 이처럼 촌은 바쁩니다. 그러한 수고가 땅에 씨 뿌려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물에 그물을 드리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빌딩 숲에서 돈을 굴려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모두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밥을 떠 넣으려는 사람들도 있다지요? 오뉴월에 서리 내릴 일입니다.

저녁 밥 지으려고 쌀을 씻다보니 촌구석에서 촌티를 벗지 않은 촌놈으로 촌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람과 수고가 손가락 사이 쌀알 한 톨마다 헤아려지는 듯 합니다. 날이 참 덥습니다. 좋은 씨앗 마음 밭에 파종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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