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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성원 전도사(정읍/중광교회)
  • 승인 2004.05.2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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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재래시장을 찾았습니다. 더러 사람 사는 풍경이 그리울 때 헛헛한 마음을 따스하게 채우는 곳. 요즘은 무슨 마트가 많기도 하여 재래시장이 제 몫을 하기엔 팍팍한 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대형쇼핑몰 탓에 소비가 잦아드는 형편이니 재래시장의 좌판이라고 하여 편히 손님 맞을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무엇보다도 편리함과 적정선 이하의 가격표가 지닌 힘이 커 보입니다. 백 원만 깎아 달라, 안 된다, 하는 실랑이가 마트에는 없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래시장 또한 이제는 그 모양새가 그닥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돈을 주고받으며 오가는 손놀림에 더딤이 없어졌습니다. 더딤이 없다는 건 눈빛 마주칠 일이나 대화 오갈 일이 없다는 얘기지요. 사전의 정의처럼 오가는 거래의 중심을 마트라고는 합니다만, 건조한 형광등과 거래명세표 보다는 아무래도 백열등 가득한 곳이 정겹습니다. 콩나물시루 마냥 아옹다옹 거리다 가방 끈에 미련두기에는 힘겨운 삶을 살아온 이들이 침 발라 적은 갈 짓 자 글씨의 영수증 받는 일이 그리 좋습니다. 뭐가 그리 좋은가, 물으시면 딱히 답할 말도 없습니다. 재래시장에서 마트의 주차장을 찾진 말아 주십시오.

아직은 인간의 온정이랄지 혹은 따스한 숨결이랄지 그러한 이름을 붙일만한 재래시장의 한 모퉁이를 돌다가 집 한 켠 손바닥만 한 밭떼기에 심을 고구마 순을 샀습니다. 그런데 같은 고구마 순이면서도 파는 곳마다 가격대가 어찌 그리도 천차만별인지요. 함께 산 고추 모종과 가지 모종 또한 장소와 사람에 따라 가격차가 크더군요. 정확히 말해 가격차라기보다는 동일한 가격에 ‘덤으로’ 얹혀주는 양이 달랐지요. 내심 덤으로 얹힌 양이 사람의 품성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가졌드랬습니다. 양화가 악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여기서만큼은 예외일 것이라는 생각을요.

재래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좌로 논과 우로 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늘 좌우만 살피며 지나쳐 온 길인데 오늘은 길 앞과 길 뒤편이 시선에 걸려왔습니다. 길의 시작과 끝은 땅과 하늘이 맞닿은 풍경으로, 마치 하늘이 땅을 품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따스했어요. 그 풍경은 마트보다는 재래시장을 많이 닮았더군요. 마트의 냉정한 가격표 보다는 재래시장에서 덤으로 얹혀주던 따스한 그 무엇이 깃들여 있었어요. 그 무엇이 뭘까 골똘했는데 그저 미소만 얼굴에 번져왔습니다. 그래서 그냥 길 좌우의 논과 밭에 그 미소를 흘려주었지요. “이 미소 덤으로 받고 곡식과 야채들 잘 키우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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