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행복찾기의 쏠쏠한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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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행복찾기의 쏠쏠한 재미
  • 유성원 (대신교회)
  • 승인 2004.03.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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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하루가 긴 사람은 긴장을 필요로 합니다. 바삐 시간을 쪼개고 굴리는 사람은 여유를 필요로 합니다. 아침형 인간으로 개조되어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림의 철학을 수용해야할 사람도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요? 누구나 그렇듯, 긴장과 여유가 수시로 교차하는 삶일 테지요? 그런데 긴장하는 순간에도 혹은 여유로운 순간에도 한결같이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도 당장에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지요. 그럼 지금부터 그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당신의 경험을 따라서 아래와 같은 항목의 메모 과정만 거치면 됩니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1. 아침

맑게 갠 오늘 아침은 운동하기가 좋았다. 신발 끈 바투 조이면 마음도 다잡게 된다. 걷다 달리고 달리다 걷다.

2. 청소

얼굴만한 방 두 개와 손바닥 반 쪽 만한 마루 청소며 화장실 청소에 설거지와 쓰레기 비우기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로 빨래까지.

3. 음악

홀로 방에 앉은 오후를 이용해 간만에 음악을 듣다. 방도 청결하고 마음도 상쾌하다. 햇살도 좋아 창문도 활짝 열었다. 가끔 음악을 내가 감상하는 건지 감상되는 건지 알기 어렵다.

4. 전화

031번이 찍힌 전화가 걸려왔다. 종안형. 조금 전 화장실서 읽은 책 한 대목에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로 올라가며, 현실에서 이상을 부단히 읽을 것"이라 적혀있었는데 그걸 전화로 일깨우시다.

5. 서점

교보문고에 들러 책 네 권 구입. 김성동이 지은 '천자문'(보급판), '배움의 도', 'hackers tofle' 일부.

6. 둘리

대학로 한 쪽 골목의 '둘리분식'. 제육덮밥, 오징어덮밥 등의 가격이 라면 한그릇 값이다. 2,000원. 좋다.

7. 달

하나님 손톱 같은 하늘 장식품이 보기 좋다.

8. 버스

정해진 거리와 정해진 정거장에 한해서 700원을 누릴 수 있다. 700원에 한해서 정해진 거리와 정해진 정거장에 도착할 수 있다. 버스는 삶처럼 순환하다 때가 되면 코스를 바꾼다.

9. 패스트푸드 점

대여섯 살 됐음직한 오누이가 옆 컴퓨터에 앉아있다. '동요나라'를 보며 기분 좋아한다. 스피커가 없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뭐가 그리 즐거울까. 그런데 오빠로 보이는 아이가 말한다. "소리가 다 나오는 것 같다, 그지?" 굳이 귀로 듣지 않아도 눈으로 보아 아는 것이 많다. 녀석들. 이제는 지들이 노래를 부른다. 사탕 베어 문 입으로 옹알옹알. 귀여운 녀석들, 진정한 speaker.

10. 성경

내내 그 제본한 귀퉁이만 매만지다 내려놓는 것이 성경 아니겠는가, 한다. 가끔은 그런 몸짓을 하고 있는 신앙의 풍경.

11. 절기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지나고 경칩도 지났다. 혹자는 내 정신의 나이가 한 오십세 쯤은 되었을 거라고 한다. 비꼬는 투로 들리지도 않고 그리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불혹에 접어든 이가 무의미하게 뱉은 말은 아니겠지. 여하튼 자연의 속도와 그 속도에 비례하여 변화하는 그 공간감을 피부로 느끼는 일은 행복하기도 혹은 두렵기도 한 일이다.

12. 재생

아끼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오랜 것을 가끔 헤아려본다. 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 가지 사물/사람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필요를 모르는 것이 거의 다 라고 해야 맞다.

13. 공부

공부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거기엔 깊이 우려낸 맛이 있다. 그런 공부.

14. 사랑

따스한 기운이 번져 전일을 이루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만남의 영역.

 

직업상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잠시 접고,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기억에 떠올려 메모해 보세요. 쏠쏠한 재미와 행복이 긴장과 여유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있음을 문득 감사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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