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의료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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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의료선교"
  • 이화진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치위생학과 3학년)
  • 승인 2004.03.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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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새벽 5시, 나는 아침 찬 공기를 마시면서 기숙사를 출발하여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의 해외의료선교를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하였다.

캄보디아!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일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드디어 준비했던 일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해외의료선교단은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제11차 의료선교단이라는 이름 아래 출발했다.

내과를 비롯해 여러 전문분야의 교수님들과 간호사 선생님들, 그리고 의학과, 간호학과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그 중 치과팀은 김연환 교수님, 김영수 선생님 그리고 치위생학과 학생인 나로 구성되었다. 우리는 1월 26일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준비모임을 가지며 일정에 대해 검토하고 기도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떠나기 열흘을 남겨두었을 때부터는 매일매일 모이면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그 지역에서 사용할 많은 약을 포장하고, 우리가 사용할 생필품을 사고, 진료에 사용할 장비며 소모품들을 챙기는 일을 하면서 이제 드디어 출발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출발하기 전날인 2월 27일. 일행은 파송예배를 끝으로 11차 캄보디아 의료선교의 모든 준비일정을 마쳤다.

2월 28일. 준비기간 동안 조류독감이란 무서운 괴질에 나는 발목이 잡힐 뻔했으나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의 염려를 뒤로하고 나는 새벽에 학교정문에 모인 출발 단원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무사한 일정을 기원하는 예배가 드려졌고 우리 일행은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드디어 비행기가 한국 땅을 박차고 이륙했을 때의 그 기분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략 5시간쯤 지났을까? 비행기는 베트남 호치민시에 도착했다. 캄보디아에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다시 경비행기를 타고 2시간쯤 더 가야 한다고 했다.

드디어 해외의료선교를 하기 위한 캄보디아 첫발을 내딛는 순간, 일단 후덥지근하고 더운 그곳의 날씨가 먼저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의료선교활동을 할 바탐방지역은 이곳에서 육로로 이동을 해야 한다는 말에 우리 일행은 캄보디아 시내 시엠립이라는 곳에 위치한 호텔에서 우선 1박을 하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 간단하게 떠날 차비를 한 우리 일행은 35인승 버스를 타고 바탐방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곳까지의 육로는 우리나라처럼 도로사정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지나야만 했다.

차가 덜컹거리면서 몸이 들썩거렸지만 창밖으로 지나치는 야자수와 망고나무를 볼 때는 내가 진짜 바다를 건너 이국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5시간쯤 지났을 무렵, 우리 일행은 바탐방에 도착했다. 우리가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의료선교단이라는 이름을 걸고 봉사활동을 펼칠 곳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내일부터의 진료를 위해 장비와 기구를 정리하니 그럴듯한 진료실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준비를 마치고 고아원 근처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한 방을 쓰는 룸메이트 언니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눈 나는 언니들과 밖에 나가서 시내 구경도 하고, 여러 물건들을 보면서 쇼핑을 잠깐 즐긴 뒤에 숙소에 들어와서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드디어 의료선교 일정 시작 3월 1일!! 아침 일찍부터 치과에는 환자가 줄을 섰다. 첫 환자를 받는 순간은 내가 마치 슈바이처가 된 기분이었다.

몸이 아픈 환자들과 말이 통하지는 않아도 그곳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했고, 나는 그런 현지사람들을 위해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생각하며 성심 성의껏 진료를 도왔다.

내가 만약 오지 않았다면 이러한 경험을 어디서 해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첫 임상 경험을 다른 친구들보다 좀 더 특별하게 한 거 같아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각각의 모든 과들이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리 치과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밀려들어 오는 환자들을 보기 위해서 선생님의 손놀림은 매우 빨라졌고, 나도 이제는 기구들이 손에 익어서 선생님과의 호흡이 어느 정도 맞아가고 있었다. 불과 이틀 전 우려와 두려움이 앞선 나에게는 너무나도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진료를 모두 마친 시간은 오후 6시가 되어서였다. 첫날의 긴장과 더위로 인해서인지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나는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하루의 경험으로 나로서는 더욱더 자신감이 붙었고, 환자 한 명, 한 명을 치료할 때마다 느끼는 뿌듯함으로 내일도 충분히 보람차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몸을 추슬렀다. 3월 2일. 어느 새 나는 그곳 날씨에 적응도 하고, 현지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지낼 정도가 되었다.

진료가 다 끝난 후에 고아원에서 먹는 저녁식사는 힘든 진료 후에 먹는 거라 그런지 항상 밥맛이 꿀맛이었다. 거기 음식들도 입맛에 맞았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이 역시나 제일 맛있었다.

내일도 역시 더운 날씨와 밀려들어오는 환자와 한판 승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하루의 경험으로 나로서는 더욱더 자신감이 붙었고, 환자 한 명, 한 명을 치료할 때마다 느끼는 뿌듯함으로 내일도 충분히 보람차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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