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평화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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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평화의 집
  • 유정숙 (극동정보대학 치위생과)
  • 승인 2002.12.2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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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봉사는 시간이 많고 풍요로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적게 가진 사람들이

나눔의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삶 …

하루 왕복 160km의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출·퇴근하는 나는 주로 운전하는 동안 하루의 일과를 계획하기도 하며 되돌아보기도 한다.

아침 출근 시간의 영동고속도로 정체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지만 요즘은 도로공사로 인해 좀 더 지연되고 있다. 그 출근길에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들으면 사회의 동향에 관해 관심을 가지려는 작은 노력도 하지만 어떤 날은 울긋불긋 고운 옷을 차려 입은 단풍나무들과 작은 바람결에도 황금빛 파도를 만들어내는 벼이삭들, 한들한들거리는 몇 가닥의 억새와 특히 안개라도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날은 내 마음을 더욱 더 기억 저편으로 몰아내곤 한다.

경기도 이천 어석리라는 자그마한 마을에 위치한『작은 평화의 집』엔 16명의 원생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정신지체, 뇌성마비, 자폐증 등을 앓고 있으며, 이 많은 아이들을 홀로 묵묵히 돌보고 계시는 분은 당신도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는 분이다. 개인적으로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셔서 시집과 소설을 출간하였다고 수줍은 미소를 띠며 선물로 주셨다. 그 시집엔 그 동안의 원생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아이 하나하나에 대한 특징과 함께 생활하다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이미 떠나가 버린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땐 마치 내가 직접 그 아이들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작은 평화의 집과의 인연은 학생들의 지역사회 구강보건이라는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보니 지역사회 주민들의 구강건강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왕이면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해택을 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비교적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대상을 물색하던 중 이천시 보건소 구강보건실과 연계하여 구강보건사업을 추진하게 됨에 따라 맺게 되었다.

학교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장호원 시내에서 또 다른 버스로 갈아탄 후 버스에서 내려 30분 이상을 걸어 들어가야 했으므로 아주 짧은 거리도 꼭 차를 이용하는 우리에겐 걸어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벅차게 느껴졌었다. 어렵게 물어물어 찾아갔으나 우리를 맞이하신 원장님은 처음엔 다소 냉소적으로 대해 주셨다.

잘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안고 어렵게 찾아온 학생들은 묘한 긴장감에 쌓인 채 요양원에 이동유니트를 설치하고, 학생들이 만든 구강보건교육 자료도 활용하여 직접 교육도 하고 구강상태도 살펴본 후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이 닦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스스로 이닦기가 잘 실천되지 않는 원생에겐 손을 잡고 같이 닦아주었고, 1주일마다 그 동안의 잇솔질 결과를 체크하여 잘 닦이지 않은 부위는 반복하여 지도하였다.

원생들은 치아 홈메우기나 불소도포 중엔 타액의 분비량이 너무 많아 괴로워하기도 했으며, 간혹 구강검사 시 아예 입을 꼭 다물고 전혀 협조를 않는 원생들도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원생은 누워있거나 앉아 있는 상태에서 치석제거와 불소도포를 받기도 하였다.

학생들 중엔 자원봉사를 통해 장애우를 접해본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여서 장애우를 대할 때에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걱정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나 역시 재학시절 동아리에서 충주에 소재한 재활원으로 장기진료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론 장애우를 접해본 경험이 없어 내심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원생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학생들의 서툴지만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서로 통했는지 두 팔을 걷고 원생들과 하나가 되어 좀 더 완벽하게 처치해주려는 학생들의 모습들은 어떤 프로 치과 스텝들보다 더 아름다웠다.

냉소적으로 우리를 맞이하셨던 원장님도 이런 우리의 모습과 원생들의 구강에 매주 변화가 생기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잇솔질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한 원생들의 태도에 마지막 주엔 본인도 스케일링을 받으셨고 인근의 다른 요양원도 봉사를 해줄 수 있냐고 슬며시 부탁하시기도 했다.

어느 날 요양원 앞마당의 들꽃이 너무 예쁘다고 하였더니 자그마한 화분에 옮겨 심어 주시며 잘 키워보라고 하셨다.

한 달 동안을 계획하여 진행되었던 『작은 평화의 집』 구강보건사업이 끝나갈 무렵에는 학생들도 봄 냄새를 흠뻑 맡으며 매주 따사로운 봄날의 시골길 산책과 매주 목요일엔 우리를 기다리며 마중을 나와 있다가 소리를 지르며 반가이 맞이해 주던 원생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린 장애우들의 “또 오세요!” 하는 메아리가 내 귓가를 맴돈다. 출퇴근 때마다 마을 초임을 지나다니며 ‘내년에 꼭 다시 와야지’ 했던 결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제 또 한 번의 코스모스가 지려고 한다. 봉사를 하는 건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고…

진정한 봉사는 시간이 많고 풍요로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적게 가진 사람들이 나눔의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삶이 아닐까…

함께 사업을 추진하고 도와주셨던 이천시 보건소 구강보건실의 치과의사 & 치과위생사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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