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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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 황윤숙 논설위원(한양여자대학교 치위생과 교수)
  • 승인 2017.03.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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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숙 논설위원

사극 드라마에 몇 년에 한 번씩 재해석되어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그 단골손님은 이순신, 장희빈, 연산군 등이 있고 최근에는 홍길동을 주중에 안방에서 다시 만나고 있다. 햄릿을 떠올리면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가 생각나듯이 홍길동하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형을 형이라고 호칭하지 못한 서자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호칭이란 “이름 지어 부름. 또는 그 이름”을 의미하고 우리의 삶에는 많은 것들이 이름을 가지고 산다.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로 이름으로 사람과 단체 등을 구분하고 관계를 알게 한다. 그리고 명찰은 “성명, 소속 등을 적어서 달고 다니는 헝겊 또는 종이나 나무쪽을 이르는 말. 이름표”라고 한다. 하지만 이름은 단순히 호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말 사전에는 이름에 대한 행동과 책임을 가지라는 “이름값”이라는 무거운 책임의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지난 2016년 5월 29일 의료법이 개정되었다.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장의 의무(제4조) 조항의 하나로 의료기관의 장은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도록 의료인, 학생(실습중인 경우), 간호조무사 및 의료기사에게 의료기관 내에서 명찰을 달도록 지시·감독하여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시정명령(제63조)이 내려지고 시정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제92조3항)를 부과 받게 된다.

의료법 개정의 취지는 환자가 의료인의 신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여 의료인이 아닌 자를 의료인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하고 보건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법 개정 발표 이후 치과계의 일부는 찬성을 하고 일부는 반대를 하며 보건복지부에 항의하기도 하였다. 또한 지난 1월 전철 내부에 치과위생사라는 이름을 알리기 위한 홍보물 게시에 대하여도 불편한 시선과 논쟁들이 오고 갔다.

최근 강남의 유명 치과에서 간호사가 임플란트 수술을 하였고 치과를 압수 수색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SNS에서 몇몇 누리꾼들은 치과위생사였을지도 모른다라는 댓글을 달기도 하였다(이후 수사과정에 밝혀져 이후에는 정확히 기록되긴 하였지만). 치과계 인력들과 관련된 기사보도 시 기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명확히 치과위생사인지 간호조무사인지 구분 없이 의료기관의 여성 인력들을 간호사로 묶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법으로 정한 이름이 있음에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여러 오해와 피해자를 속출한다.

금번 의료기관의 명찰 패용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환영한다. 가끔 환자가 되어 진료를 받아보면 왜 이런 법이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환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시술이 훈련되고 교육된 사람들에게서 제공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치과의사는 치과의사의 업무를, 치과위생사는 치과위생사의 업무를, 또 기타 인력들은 그들에게 국가가 명시한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이름값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금번 조치에 혹자들은 아직 치과계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조인력난을 내세운다. 보조인력 구인난은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최근에는 한 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선거에도 뜨거운 이슈로 등장한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정말 중요한 듯이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해결 방법들에 대한 전략을 보면 ‘아직 중요하지 않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당 당사자들이 모여 심도 있게 논의하고 정책을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당시를 모면하기 위한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라 할 수밖에 없는 단편적인 방안만 제시될 뿐이다.

대한치과위생사협회가 치과위생사라는 이름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법률적으로 치과위생사에게 부과된 그 이름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겠다는 “이름값”을 하겠다는 약속의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원 한사람 한사람은 전철 안의 홍보물을 만날 때마다 단순히 내 직업을 홍보하는 가벼운 일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료실 안에서 명찰을 패용하고, 각자는 자신들의 업무를 지키며, 이름에 책임감을 갖고 이를 행동해야 한다. 그 책임감 있는 의무를 다하기 위한 노력들은 각 치과위생사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홍길동은 얼마나 답답하였을까?
50여 년 동안 이 나라에 치과위생사로 산 우리들은 그 답답함이 무엇인지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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