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사람들
40년 치과위생사 인생…가장 잘한 일은 ‘치과위생사’가 된 것김복남 대구 덕영치과병원 진료부장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치과위생사가 된 것입니다.”

대구 덕영치과병원 김복남 진료부장(61·사진)은 자신의 일에 대해 확실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부장은 보건소와 개인치과, 종합병원 치과 등에서 40년 가까운 치과위생사 경력과 대구·경북치과위생사회 회장, 대구 노블레스 봉사단체 운영위원, 대구보건대 치위생과 외래교수를 지내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해오면서 여러 경험을 쌓았다.

그런 그에게 치과위생사로 지내는 동안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묻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치과위생사 인생은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고교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치위생과에 진학하게 된 김 부장은 대학 졸업 후 출산과 육아로 인해 약 6년간 일을 쉰 것 외에는 꾸준히 현직 치과위생사로 근무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력단절을 겪은 그가 선택한 첫 직장은 보건소였다.

“1988년 당시 전국 보건(지)소에서 대규모 치과위생사 특별채용을 했어요. 그때 경주시보건소 공무원 특채로 뽑혀 치과위생사 업무에 복귀하게 됐어요.”

김씨는 이후 10여 년 동안 보건소에서 구강보건실을 운영하고 학교구강보건실 운영 등 공중구강보건사업을 도맡아 진행하며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했다. 임상가로서 예방 분야를 개척하겠다는 결심에 자진 퇴사를 결심하기 전까진 그랬다.

“치과대학 예방치과 교수님과 의견을 나누며 공중구강보건사업뿐 아니라 임상에서도 예방 분야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치과에 예방파트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선례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결국 그는 10년간 다니던 보건소를 그만두고 치과로 향했다. 그리고 스케일링 등 예방위주의 진료를 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녀의 학교 문제로 대구로 이사를 오면서 치과를 그만두게 된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구강관리용품 사업가로 변신을 꾀한 것이다.

“일 년간 구강관리용품샵을 운영했어요. 아이디어는 좋았던 것 같은데 사업에 소질이 없었는지 적자를 보고 정리하긴 했지만 그때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됐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마침내 예방과를 만들다

사업가 활동 당시 이미 덕영치과병원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은 김씨는 1년 만에 다시 임상에 복귀했다.

덕영치과병원은 20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중 절반에 가까운 90명이 치과위생사로, 근무 경력도 1년차부터 25년차까지 다양하다. 김 부장은 이곳에서 치과위생사 경력만 40년 가까운, 근무 경력 17년차의 중간 관리자로서 역할과 위치를 확립하고 있다.

무엇보다 오래 한 가지 일을 하다보면 나태해질 법도 한데, 김 부장은 업무수행에 무게 중심이 기울었다. 특히 그는 입사한 지 5년째 됐을 때, 자신이 그리던 치과 내 예방과 개설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마침 병원 내부에서 자투리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화두로 떠올랐고 김씨는 퇴사를 무릅쓰고 평소에 구상하던 예방과 설치를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예방과 설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곧바로 사표를 냈더니, 병원에선 ‘예방과를 운영해도 좋다’며 계속 일해 달라고 이야기했고, 지금의 예방과가 생기게 됐죠.”

그렇게 2006년 처음 문을 연 예방과는 오늘날 하루 평균 30명 정도가 찾는 병원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예방과에는 치과위생사 6명이 배치돼 스케일링, TBI, 치면 세균막 관리 등 환자 중심의 계속구강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개설 초기에는 임플란트 치료 후 유지관리 위주로 운영됐는데, 지금은 병원에 온 환자들 대부분은 예방과를 찾아요. 그런 점에서 수익이 크게 나는 곳은 아니지만 병원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고 봐요.”

나눔의 삶 ‘노동의 봉사화’ 

김 부장은 직장에서 치과위생사로 입지를 확고히 한 것은 물론 자신이 가진 재능을 지역사회에 나누며 소외된 이웃을 위해 건강지킴이 역할도 자처했다. 이는 보건소에 근무할 당시 중증장애자를 위한 방문보건사업을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와병 중인 장애인들에게 덴탈케어(Dental care)를 하면서 구강건강의 중요성을 느끼고 치과위생사가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해 솔선수범하게 됐어요.”

실제 김 부장은 2000년부터 현재까지 매월 2~3번 대구 중증장애인시설 여러 곳을 찾아 스케일링 등 재능기부와 봉사를 펼치고 있다. 또한 덕영치과병원에서 근무하다 인연이 닿은 국제로타리 봉사단체, 대구 노블레스 봉사단체, 1004 지역사회 봉사단 등 참여로 지역사회를 위해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김 부장은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 학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공부에 대한 열정도 컸던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7월에는 대구보건대에서 운영하는 보건의료산업최고위과정을 마쳤다.

프로그램 수료 과정은 매주 반차를 사용해서 참가해야 하고 500만원에 달하는 큰 비용을 치러야 하지만, 자기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아깝지만은 않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어 기쁘기도 하고 경력 관리와 인맥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어요.”

김 부장은 이 밖에도 1995년부터 2006년까지 11년간 대구·경북치과위생사회 회장을 맡아 지역 치위생계를 위한 봉사에도 전념했으며, 모교인 대구보건대 치위생과에서 2001년부터 학생 실습지도담당, 2010년부터 외래교수로 각각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대구보건대 총동창회 수석부회장으로서 8년간의 임기를 마무리하고 회장으로 취임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치과위생사로서 봉사가로서 지도자로서 기반을 갖춘 그가 앞으로 꿈꾸는 삶은 어떨까. 여기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노동의 봉사화.’

“지금은 일하는 만큼 대가가 따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현직 치과위생사로서 일하고 봉사하며 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김 부장은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후배들을 향한 진심 어린 메시지도 남겼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치과위생사를 직업으로 택한 것이고, 저는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치과위생사는 구강건강 지킴이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선배는 후배의 롤모델이 돼야 하고 후배들 역시 의료인 치과위생사로 인정 받으며 적극적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배샛별 기자  press@kdha.or.kr

<저작권자 © 치위협보(덴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샛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